“매너리즘에 빠지는 순간 퇴출이죠”


10년 넘게 한 분야에만 있으면 관행과 통념에 젖어 젊은 시절의 혁신과 패기를 잃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마트 이호정 바이어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며 필드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겨울이 되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감귤이 어김없이 매장 입구에서 고객을 맞이한다. 그런데 이마트 감귤 매대 앞에는 암호 같은 숫자들을 풀이한 아리송한 POP 한 장이 걸려있다. 121, 111, 101. 머리를 갸웃거리게 하는 이 숫자들은 감귤 맛을 결정짓는 당도와 산도를 의미한다. 즉, ‘121’은 당도 12도 이상에 산도 1% 미만, ‘111’은 당도 11도 이상에 산도 1% 미만을 뜻한다.


이마트 과일 담당 이호정 바이어는 “유통업체 최초로 당도와 산도에 따라 감귤 등급을 제정해 적용시키고 있습니다.”라며 “고객들에게 숫자에 숨어있는 비밀을 알려주고 명확한 기준에 따라 감귤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죠.”라고 말했다.
이마트 감귤 매대에서 특이한 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감귤 상자 윗면을 투명창으로 만들어 고객들은 감귤 크기가 어떠한지, 상한 것은 없는지 육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사과나 딸기 등 다른 과일들에는 이미 적용되고 있는 사례이지만, 일일이 수작업으로 필름을 부착해야 하는 수고가 뒤따르기 때문에 판매량이 많은 감귤은 일반 종이상자에 판매되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호정 바이어는 “기존에는 고객들이 내용물을 보여 달라고 하면 직원들이 상자를 개봉해 확인해줘야 했습니다. 그러나 패키지를 개선해 고객들이 직접 상품을 확인하고 구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고 말했다.

입사 이래 과일만 13년
1998년 이마트에 입사한 이호정 바이어는 줄곧 농산물만 담당해왔다. 입사 초기에는 매장에서 농산물을 판매했고, 바이어 업무를 담당한 지는 7년이 됐다. 부문별 이동이 잦은 유통업계에서 과일만 7년을 맡고 있자니 어느새 과일팀에서 가장 오래된 베테랑 바이어가 됐다.
이호정 바이어의 과일 사랑은 입사 때부터 유명했다. 당시 대졸 사원들은 사무직에 배치되는 것이 관례였는데 사무직을 마다하고 매장 근무를 자청했다. 그것도 농산물 담당이 아니면 그만 두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다들 회피하는 농산 매장을 자처하다니, 동료들 사이에서 이호정 바이어는 별종 취급을 받았다. 그는 “농산물은 변수가 많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그래서 과일은 서리를 10번 맞아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죠. 예측불허의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가가 관건입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력 13년차인 이호정 바이어도 여전히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에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지난 여름에는 수박 행사를 잡아놨는데 예보에 없던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계약재배농가의 30%가 침수를 당하고 말았다. 계획했던 판매물량을 확보하기는 이미 그른 상태. 이렇게 악화된 환경에서도 이호정 바이어는 씨 없는 수박 및 흑피수박을 단독 공급받고, 사전에 비축해놨던 포도 판매를 서두르는 등 발 빠르게 대안을 마련한 덕분에 매출 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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