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게 비지떡?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습니다. 없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경험에 비추어보면 실감나는 속담입니다. 제가 싼 것을 참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늘 불만이죠. 그렇다고 아내나 아이들에게까지 싼 것을 사주지는 않습니다. 유독 저 자신에게 싼 것을 입히고, 먹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물건 살 때도 많이 고민하는 타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꼭 제 꾀에 넘어가는 여우처럼 싼 것을 골라 샀다가 후회하고 낭패를 보게 됩니다.

지난해 11월 일본 연수차 어느 유통업체를 방문했습니다. PL상품인 구두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구두를 바꿔야 할 시점이고 해서 가격을 봤더니 우리 돈으로 3만 원이 채 못 되었습니다. 냉큼 샀습니다. 편하고 좋았습니다. 그런데 5개월 남짓 신으니 안쪽부터 훼손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 구두의 수명은 7개월인 셈입니다.

또 하나, 얼마 전 신문 광고에 난 구두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자그마치 두 켤레 구두 가격이 29,800원이었습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주문하고 송금했습니다. 배달되어 온 겉모양은 여느 구두 못지않게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신고 출근을 했더니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아파옵니다. 다음날 다른 구두도 신어봤습니다. 복숭아뼈를 계속 찌르는 느낌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서 봤더니 그 부위 피부조직이 벗겨져 있었습니다. 사이즈는 딱 맞는데도 뭔가 부족했습니다. 역시 싼 게 비지떡이었습니다. 결국 아내에게 한 소리 듣고 말았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이러다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하루 빨리 경제 회복을 위한 불씨를 찾아야 합니다. 유럽을 비롯한 우리의 수출 상대국들도 힘든 상황에서 회복의 불씨는 내수 경기를 살리는 것뿐이라고 지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결국 저축이 아닌 소비 진작입니다. 경제학자 존 M. 케인스가 제기한 ‘저축의 역설(the paradox of saving)’ 이론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 오히려 내수를 줄이고 경제활동을 저하시켜 경제를 총체적 불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소비 활성화를 위해서는 유통업체 역할이 그 만큼 중요해졌습니다. 지갑을 열게 하는 프로모션부터 가격전략, 좋은 상품을 적정가격에 시장에 내놓는 타이밍 등이 필요합니다.

일본 유통업체는 싼 가격 전략만 고수하여 오히려 장기불황을 부채질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싼 것만 개발해 판매하려는 유통업체, 싼 것만 찾는 소비자, 싼 것만 만드는 제조업체, 이익구조가 형성되지 않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지난 8월은 잠 못 드는 밤의 연속이었습니다. 지독한 열대야가 그렇고, 런던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대한민국의 함성이 그랬습니다. 그 함성과 환희, 그리고 아쉬움이 아직도 귓전에 맴돕니다. 이런 시기에도 저희 팀은 더 없이 중요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물론 9월호 준비도 그렇지만 ‘2012유통업체연감’ 마감이 있었습니다. 약 1,000쪽의 유통 관련 통계집을 엮어 낸다는 것은 늘 산고일 수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잘 팔리는 행운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행운은 기회와 준비가 만났을 때 온다고 했습니다. 9월 결실의 가을 이제 우리에게도 행운이 올 것으로 믿습니다. 준비가 잘 되었다는 자기 최면을 걸면서요. 독자 여러분의 행운도 함께 기원합니다.